top of page

[서울경제] 한국의 민화 프랑스를 홀리다

서울경제=조상인 기자

Mar 29, 2016


한국을 대표하는 미술작품으로 신라의 금속공예나 고려청자, 조선의 문인화 등을 손꼽을 수 있지만 이들은 왕실과 귀족 등 그 향유 주체가 제한적이었다. 반면 조선 후기 등장한 민화(民畵)는 평민들도 보고 즐기며 때로는 소유할 수도 있는 평등한 예술이었다.


책가도·화조도·어해도 등 민화 60점과 함께 민화 정신을 계승한 한국 현대미술가의 작품을 소개하는 ‘한국 현대미술의 근원전(展)’이 프랑스 파리의 아담 미츠키에비츠 박물관에서 지난 14일 개막해 현지 관객들의 특별한 관심을 받고 있다. 그간 유럽에 소개된 한국미술은 빈틈없는 완벽함을 추구하는 귀족문화가 주를 이룬 것과 달리, 민중이 스스로 그리고 누렸던 민화에는 고정관념을 비트는 해학성, 원칙을 벗어난 파격미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호작도(虎鵲圖) 속 호랑이는 권위를 집어던진 채 함박웃음을 지으며 평안을 기원하고, 물살을 가르며 뛰어오르는 물고기와 무리지은 게를 그린 어해도(魚蟹圖)는 신분상승과 장원급제의 소망을 담고 있다. 서가를 그린 책가도는 사랑방에, 탐스런 꽃을 활짝 피운 모란도는 안방에 걸려 삶을 풍요롭게 했다. 


유럽인의 눈에는 그림의 내용 뿐 아니라 민화의 기법도 이채롭다. 민화에는 서양이 르네상스 시대에 발전시킨 ‘투시도법’ 같은 기법도 쓰였지만 동시에 여러 곳에서 본 모습을 그린 ‘다시점’ 기법이나 주제의 비중에 따라 크기를 왜곡해 그리기도 해 오히려 현대미술에 가깝게 보이는 까닭이다. 이같은 경향은 한국의 젊은 화가들에게로 이어졌다. 캔버스에 먹을 재료로 삼아 최첨단의 자동차를 그리는 방식으로 현대적인 삶의 풍경을 보여주는 장재록의 ‘다른 곳(Another Place)’시리즈나, 연필로 촘촘한 밑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금박을 쌓아올린 도윤희의 ‘눈이 내린다. 빛이 부서져 내린다’ 등의 작품은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한국미술의 저력을 보여줬다. 


한불수교 130주년 한불상호교류의 해를 맞아 이번 전시를 기획한 헬리오 아트 측은 “한국의 민화는 걸어놓고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삶 속의 회화였다”라며 “이러한 민화는 수세기 뒤에 등장한 팝아트의 정신과도 일치한다”고 설명했다. 지난 14일 개막한 전시는 31일까지 계속된다.

bottom of page